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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직장인 CCJ/CCJ의 Review

화나 1집 - 화나틱(Fanatic) 13주년 기념 2CD 에디션 리뷰

by Cool Calm Joon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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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쓰는 직장인 쿨캄준입니다.

오늘은 화나의 1집 화나틱 13주년 에디션의 피지컬 앨범에 대해 글을 작성합니다.

화나틱 13주년 피지컬 에디션은, 화나의 1집이자 명반인 <Fanatic> 발매 15주년 기념으로 데이토나 레코즈에서 릴리즈 된 앨범입니다.

본 글에는 화나가 화나틱 13주년 피지컬 앨범 내 책자에, 각 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재한 부분들 또한 담고 있습니다.

참고로 화나의 화나틱 13주년 앨범은 데이토나 레코즈 사이트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가격은 17,000원이고(2CD에 이 가격이면 좋네요), 배송비는 4,000원입니다:

 

 

화나틱 13주년 앨범의

포장된 상태입니다

화나틱 앨범이 포장되어 있습니다. 앨범 커버의 색이 화이트, 그레이 그리고 블랙톤입니다.

마이크를 들고 있는 고블린이 있는 아트웍은 오리지널 1집과 거의 동일합니다. FANATIC 로고 아트가 오리지널 대비하여 중앙으로 오면서, 아트워크가 조금 더 확대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13주년 앨범 커버에서는, 중앙 하단 고블린의 얼굴이 일부 잘려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3주년 앨범의 경우, FANATIC 폰트를 보면, FANA 폰트에 홀로그램 처리가 되어 있지 않으며, FANATIC 모두 블랙톤 처리가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THE UGLY GOBLIN의 폰트는 달라졌고 크기도 작아진 걸 볼 수 있습니다.

화나틱 13주년 앨범의

앞뒤 모습입니다

포장을 뜯은 앨범의 앞 모습입니다. 우측 상단에 화나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화나틱 13주년 앨범의 크기는 가로 14.2cm, 세로 12.4cm 및 깊이 1.5cm 사이즈입니다.

화나틱 13주년 피지컬반의 뒷모습입니다. Disc 1 및 2로 이루어져 있고, CD2는 instrumental입니다. CD1에는 13번 트랙인 Rhymonic Storm Remix가 추가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화나틱 13주년 앨범의 좌우측 모습입니다. 2CD 앨범이기에 깊이가 1.5cm 정도 됩니다.

화나틱 13주년 앨범을

열어보았습니다

화나틱 13주년 앨범은 2CD이기에 2번 펼치면 다 열립니다.

우선 한 번만 펼치면 아래와 같은 모습이 나옵니다. 좌측에는 Disc 1 CD가 있으며 우측에는 프로듀싱,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 담당 인원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Disc 1 CD 아래에 있는 아트웍입니다.

화나틱 13주년 앨범을 모두 펼친 모습입니다. 우측에 Disc 2 (Instrumental)이 있으며, 중앙에는 화나틱 앨범의 책자가 있습니다. 하단에 있는 스티커 3개는 책자 내에 있습니다.

Disc 2 CD 아래에 있는 아트웍입니다.

중앙에 있는 책자를 확대해서 본 모습입니다. 앨범 커버와 거의 동일하지만, 중앙 FANATIC 로고의 위치가 상이하네요.

화나틱 13주년 앨범 책자

화나의 Notes

1. FANATICIZE

소울컴퍼니의 2008년. 레이블로서의 입지는 어느 정도 단단해졌고 내부적으로는 개별 아티스트의 성장에 집중을 요구하던 시기였다. 사내 메인 아티스트 중 하나가 된 나 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 공연에 베테랑 선배들이 티켓을 사서 찾아올 만큼 기대받는 루키로서 어느 정도 이름을 올려가고 있던 나였지만 <Official Bootleg Vol. 2>이후 달리 큰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고, 스스로도 솔로 아티스트로서 무게감 있는 첫 앨범 발매를 갈망하고 있던 터라 곧바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나는 이전에 상시 적어놓았던 가사들을 추렸고(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가사를 미리 적어 모아두는 편이다). 그 중에 이 가사의 러프한 버전이 있었다.

2005년부터 기획했으나 제작까지는 지지부진했던 <FANATIC>의 방향은 이 곡 하나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고 볼 수 있겠다. 당시 가지고 있던 나의 광적인 이미지와 부합하는 통로가 열렸고, 남은 건 그 위를 달리는 것뿐이었다.

2. Rhymonic Storm

2007~8년 정도였나. The Quiett은 자신의 비트테이프에서 곡을 하나 골라서 써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제안을 했고 나는 <Transistor>라는 타이틀의 비트를 골랐다.

당시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러했든 나 역시 'Starcraft'에 빠져있었기에 그것을 주제로 이미 완성해놓은 가사를 곡에 붙였고, 이때만 해도 이 곡의 수록은 커녕, 발표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던 터라 혼자 부르며 만족스러워하던 차였다.

08년 말, 소울컴퍼니의 새 멤버를 뽑는 오디션 공연 'Microphone Fiend'(Crucial Star가 최종 합격하여 멤버가 되었다.)에 게스트로 서게된 나는 이 곡의 첫 선을 보이고자 회사 녹음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Zito형ㅇ과 Paloalto형이 중간에 놀러 왔었는데, 뒤에서 조용히 보고 있다가 곡이 끝나자 밖에 있던 사람들까지 데려오며 "'RS demo (당시 파일명)'를 다시 한 번만 불라달라."라고 요청했고 나는 속으로 '아, 이 곡이 잘 만들어졌구나'하고 흐뭇해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Rhymonic Storm>은 이후 생각지도 못하게 나의 대표곡 중 하나가 되었고, 공연에서 소위 떼창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겪어보고, 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외워서 나를 볼 때마다 장난 삼아 부르기도 했더랬다. 심지어는 어떤 공연에서 한 광객이 너무 잘하길래 즉흥적으로 무대에 올렸는데 그가 바로 Olltii였다(이후 ADV의 공연에서 같이 이 곡을 부르는 기획을 만들기도 했다). 곡을 접한 Tiger JK형이 감사하게도 <주파수>에 나를 섭외해 주시기도 했고, 아무튼 여러모로 나에게 다양하고 좋은 경험들을 선사해 준 고마운 트랙.

3. 가면무도회

중학생 때를 제외하면 나는 대체로 조용하고 존재감이 옅은 아이였다.

외가 책장에서 인상 깊게 읽은 <쇼펜하우어 인생론>의 영향일까.

한창 염세주의에 빠져있던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 다소 회의적으로 생각했었고 돌이켜보면 그런 연고로 이러한 가사를 썼나 보다.

고등학생 때 쓴 이 가사가 FANA하면 떠오르는 곡 중 하나가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20년이 지나 당시의 내가 타자화되어 보이는 지금에 와서는 "이 꼬맹이가 그 나이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길래 이런 가사를 만들었나."하는 생각이 들 뿐.

원안은 재즈 브라스 샘플을 사용한 두 마디 루프였는데, 이 즈음 The Quiett이 작법을 바꾸며 가상악기를 적극적으로 섞어 쓰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수정된 결과가 지금의 형태로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세련미가 더해져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4. 화약고 feat. 황보령

알다시피 요즘은 MBTI가 대세다.

2000년대에도 심리테스트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지금만큼 자신을 유형화시켜 바라보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운 좋게도 래퍼들은 작서 경험을 통해 자신을 안팎으로 비추어불 수 있었고,

나는 관계 속에서 자책과 자기 연민에 빠진 자신을 발견해 내고는 그것을 <화약고>라는 제목의 글로 옮겼다.

기사에 어울릴 만한 보컬을 찾던 와중 Kebee가 제안한 아티스트가 바로 황보령이었다.

나도 어릴 적 KMTV 등에서 MV(자우림이 카메오로 등장했던)를 본 적이 있던 1세대 인디 아티스트.

그렇게 다시 찾아 들은 노래가 <탈진>이라는 곡이었는데, 듣자마자 나와 소리로도 감성으로도 동조되는 부분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그녀의 공연 소식을 듣고 클럽 '빵'에 방문하여 곡에 대해 설명을 드렸고, 며칠 뒤 다시 만난 그 자리에서 바로 가사를 완성시켜 녹음했다. 그날 나눈 여러 대화 중, "이러저러해도 결국은 가사에서 마지막 한 마디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겠냐."라는 그녀의 말이 머리를 울렸던 기억이 난다. "그랬다. 그랬었구나."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떠나가지 않았다.

5. The Recipe of Lyrical Chemistry

지금도 그렇다지만 20대에는 늘 밤낮이 바뀌어 지냈다.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운 뒤 오전에서 이른 오후에 이르면 어느덧 아버지는 공장에 일을 가셨고 어머니는 학생들에게 일어와 미술 공예를 가르치러 복지관에 가신 뒤었다.

집이 너무 조용하면 오히려 잠이 안 온다. 항상 거실에서 TV를 켜둔 채 잠이 들었다.

보통은 숙면을 위해 주로 바둑TV를 틀어놓곤 했는데, 그날은 무작위로 채널을 넘기다 '제이미스 키친'에 고정되었다.

친구들을 위해 피자를 만드는 에피소드.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하는 모습을 생각 없이 지켜보며 잠에 빠지려는 찰나. 요리를 소재로 가사를 써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스쳤고 항상 머리맡에 두고 있던 노트를 펼쳐 아이디어를 짜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떡볶이를 사 들고 귀가하셨을 때 즈음엔 이미 가사가 완성되어 있었다.

6. Brutal Treatment (Part 1) feat. Kebee, The Quiett

당시 분위기상 소울컴퍼니의 트로이카라고 한다면 이견 없이 나와 Kebee, The Quiett을 꼽았다.

그런 고로 셋이 같이 공연 섭외를 받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한 곡 정도 공연을 트랙을 끼워 넣자는 의견으로 작업된 곡이 바로 <Brutal Treatment>였다. 예나 지금이나 단체곡은 항상 수요가 있기도 하고.

당시에는 이 곡의 Part. 2 또한 계획했다. 내 부분 가사도 완성시켰었지만 이후에 딱히 진행시킬 타이밍이 없어 사실상 무산되었다고 봐야겠다. 아직도 욕심은 있지만, 과연 언제 가는 이루어질지?

7. Deadline

<FANATIC>을 작업하면서 나는 좀 더 다양한 프로듀서에게 곡을 받아보고 싶었고 도끼에게 곡을 의뢰했다.

이리저리 가사를 쓰는 동안 도끼가 2-3개의 데모를 먼저 보냈으나 내가 쓴 가사들과 썩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아 난항을 겪던 중이었다.

그 곡들에 맞는 새로운 가사를 작업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계획했던 앨범의 흐름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MSN 메신저로 도끼가 "이 곡이 딱 형의 느낌이에요."라며 비트를 보냈고,

들어보니 그 즈음 내가 쓰고 있던 한 가사와 잘 어울릴 거 같았다.

당시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다. 그리 가깝다곤 할 수 없는 관계였다고는 하지만 어쨌건 가족의 죽음. 친구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의 자살. 여러 사건이 맞물려 20대 초중반의 어렸던 나는 죽음이 늘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감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을 가사로 옮겼고 도끼의 비트와 만나 이 곡 <Deadline>이 탄생했다.

8. Red Sun

투철한 반골 정신의 24세 청년 FANA는 DJ Son형과의 첫 술자리에서 '3rddan'이 되었고 안 어울리게도 홍대 놀이터에서 취해서 패싸움도 하고 왼쪽 위 어금니도 잃어버리며 터프한 시기를 보냈다. 믿기 힘들지 않나? 나도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

당시 "우리는 마치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 한정된 몇 가지의 보기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거기서 더욱 크게 벗어나야 한다. "따위의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고(말했다시피 나는 반골 청년이었다) 그렇게 이 가사가 나왔다.

여담이지만 이 가사는 Son형의 비트에 꼭 작업하고 싶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도끼의 한 데모곡에 붙을 뻔했었다.

이후 여러 곡절 끝에 Son형이 다시 작업해서 보내준 곡을 사용할 수 있었고, 미리 쓴 가사였는데도 형이 보낸 데모곡에 구성과 길이가 그대로 맞아떨어져서 "이 가사가 이 곡을 만날 운명이었구나."하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9. 투명인간 feat. 있다

어릴 적 하자센터에서 처음 만났던 있다 누나는 내게 있어 존경스러운 추상 아티스트였다.

2005년에 <시간의 돛단배>라는 곡으로 처음 목소리를 섞었던, 관계에 대한 폭 넓은 고찰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였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결국 그녀가 있었기에 이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줄곧 고독했지만, 20대의 어느 한 시기, 사람들에 둘러싸여 외로움을 잃어보기 전까지는 외롭다고 느끼지 못했다.

관계의 단맛을 본 것이다. 어느 길었던 밤의 한 순간 나는 그 결핍을 견디기 힘들었고 즉시 이 가사를 완성했다.

나이를 먹고 감정에 무뎌진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저 풋내 나는 어린 시절 일기처럼 보이지만, 그 때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가사가 아닌가 싶다.

 

10. 누에고치

30대가 된 뒤 비로소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을 판정받기 이전에도 늘 공허와 무력감은 나를 지배해왔다.

어디론가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의미와 방향을 모른 채 20대 초반을 보낸 듯하다.

가진 건 막연한 상상과 기대뿐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모래성처럼 현실의 파도에 너무도 쉽게 침식당해 사라졌다.

성은 매번 다시 지어져도 반복된 무너짐 속에서 점차 본래 모양을 기억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 시기, 간방의 꿈처럼 사라지는 어떤 것들을 붙잡는 심경으로 이 가사를 썼다,

나비가 될 것이라는 꿈을 갖고 기다리지만 결국 누에는 나비가 아닌 나방이 될 운명을 가진다는.

표면에 드러내진 않았지만 이러한 뒤틀린 비극을 전달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본 음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으로 꼽고 싶은데,

당시 나의 감정이라 할 수 있었던 이미지 표현 기술이 잘 담겨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인생의 Top5 곡을 꼽으라면 언제든 이 곡이 꼭 들어갈 것이다.

11. Code Name : SOUL

Vida Loca와는 소울컴퍼니 말미에 Wegun을 통해 친해졌다.

그는 사실 심플한 구성을 추구하는 내게 있어 랩을 얹기엔 다소 복잡한 곡을 쓰는 프로듀서라는 인식이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실은 이 곡도 나에게는 그러한 인상이 컸다. 거의 의도적으로 안 하는 걸 도전한다는 기분으로 랩을 했던 것 같다.

가사에 있어서는 딱히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BSEP 시절 작업하던 자동 기술의 방식으로 앞 문장과 단어를 물고 물어 적어 내려갔기 때문이다. 당시엔 거의 구성과 이야기의 틀을 짜두고 가사를 쓰던 나였기에 세상 재미있는 작업이긴 했다.

12. 샘, 솟다

소울컴퍼니는 나의 활주로였다. 시작을 함께 했던, 그리고 밖에서도 그 마지막을 지켰던.

나와는 마지막에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애정이 컸던 만큼 엇나갈 때의 분노가 더 크게 다가왔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객관적으로 볼 때 언더그라운드에서 일정 정도의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인 그룹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역할 모델이 부재했고, 다소는 강제된 선택의 기로에서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있어, 레이블은 덩치에 걸맞은 보폭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해줬고, 어느 톱니가 돌지 않는다면 다른 톱니에 부하가 걸린다는 것 또한 실감하게 했다. 물론 의지와 즐기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라도 해낼 수 있다는 점 또한.

여러모로 전무후무한 팀이었기에 소울컴퍼니의 역사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모두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가고 있겠지만, 젊은 날의 우리가 무언가를 해냈고,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13. Rhymonic Storm Remix

<Rhymonic Storm>의 Remix 트랙은 사실 <FANATIC>의 수록을 염두에 두며 기획했던 곡이다. '후폭풍'을 키워드로 하여 수 명의 이른바 'FANATIC kids'와 함께 트랙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고 섭외 명단에 굉장히 많은 후배들이 있었지만, 몇 번의 회의를 통해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지금의 5인이 확정되었다.

The Ugly Junction에서 기획했던 유튜브 영상 <UNDERRATED> 촬영 당시에 Donutman을 섭외했다. 뭐 당연히 잘 할 거라 생각했고 결과나 역시나.

Bruno Champman은 TULL <발아> 공연에서 3회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저력 있는 친구로, 항상 눈여겨보고 있었기에 부탁했다.

ChatMane은 비슷한 시기에 <그 동안에> 트랙을 작업했던 인연이 있었기에 함께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원곡 이해도가 돋보였다고 생각한다.

Khundi Panda는 항상 표현했듯이 나의 감성적 수양아들로 여기고 1순위로 섭외했었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해주는 건 없지만 알아서 잘 하니까.

곡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Stim Pack 부분이 문제였는데, The Quiett과 고민하다가 어렵지 않게 내린 결론이 조광일이었다. 애초에 나는 후배들의 놀음판을 만들고 후렴 정도만 다시 녹음하는 것으로 기획 방향을 잡았었는데, 길게 설명할 순 없지만 작업 막바지에 나도 Verse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이 와서 부랴부랴 가사를 쓰고 녹음했다.

긴 기간 동안 상황이 계속 바뀌었던 만큼, 작업하고 녹음까지 해서 보낸 다른 친구들도 있었는데 결국 제외된 부분에 대해서 나 역시 유감스럽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자기는 왜 안 불렀냐고 전화한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편곡을 맡을뻔했던 FRNK에게도. 다음 기회에. 꼭.


오늘은 화나의 명반 화나틱 13주년 앨범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실물 앨범을 구매하여 책자 내 화나가 기술한 곡에 대한 해설 또는 스토리를 읽을 수 있어서 인상 깊었습니다.

화나 15주년 기념 사인회 방문 후기 글 보기:

https://coolcalmjoon.tistory.com/442

 

화나 - 화나틱(Fanatic) 15주년 기념 사인회 및 공연 방문기

​ 안녕하세요 글쓰는 직장인 쿨캄준입니다. ​ 2024년 3월 2일 토요일 합정역에 위치한 데이토나 레코즈에 방문했습니다. 염따 팝업 이후에 두 번째로 찾은 Daytona Records, 꼭 가야만 했습니다. 왜

coolcalmjo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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